2일(현지시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달려 30여 분. 하노이와 노이바이 국제공항을 잇는 녓떤 대교를 지나자 ‘탕롱 산업단지(산단)’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산단 공장마다 베트남 금성홍기와 일본의 일장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일본 스미토모상사가 조성한 이 산단은 말 그대로 일본 제조업의 ‘요람’이다. 입구를 지나자 273만㎡(약 80만 평) 부지에 파나소닉, 캐논, 후지쓰 등 100여 개 일본 기업 간판이 끝없이 이어졌다. 매일 베트남 노동자 6만여 명이 이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파나소닉 공장에서 만난 여성 노동자는 “중국이나 한국 기업이 돈을 더 주더라도 일본 기업이 안정적이라 다들 오래 머무른다”며 “10년 넘게 근무한 숙련공도 많고, 신입도 매달 들어와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탕롱 산단 관리직 응우옌 탄(32)씨는 “입주율이 100%라 새 기업은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태국 공장 접고 베트남… ‘노동자 타운’까지 형성
파나소닉은 2020년 5월 태국 냉장고·세탁기 생산을 중단하고 베트남 탕롱 산단으로 생산 라인을 옮겼다. 당시 태국 노동자 약 800명이 감원 대상이 됐다. 중국 업체와 경쟁이 치열해지자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은 베트남의 1위 공적개발원조(ODA) 지원국이지만, 민간 기업의 진출은 한국보다 느리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 일본이 최근 베트남을 '생산 기지'로 낙。하고 조용히 진출 속도를 끌어 올리는 분위기다.
탕롱 산단에서 6차선 도로를 건넌 킴충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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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노동자 주거지인 이곳 입구에는 수백 개의 창문이 빽빽한 대형 기숙사 단지 4, 5곳의 공사가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본래 4, 5층 규모의 빌라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였지만, 최근 거주 수요가 폭증하자 아예 대규모 기숙사촌으로 변모한 것이다.
기숙사 주변에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슈퍼마켓, 노천카페, 일본 유학원 등이 들어섰다. 노천카페에서 만난 스미토모일렉트릭(SEEV) 노동자 호앙(20)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라며 “월세가 200만 동(약 10만 원) 수준으로 저렴해서 돈을 모으려는 젊은 노동자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베트남 전국으로 뻗어가는 일본 공장
일본 산단은 하노이를 넘어 베트남 북부와 중부로 뻗어갔다. 스미토모상사는 하노이 탕롱 산단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북부 흥옌성에 탕롱2 산단, 빈푹성에 탕롱3 산단을 잇달아 개발했다. 중부 타인호아성에는 2027년 개소를 목표로 탕롱4 산단을 짓고 있다.
기업들의 독자 진출도 활발하다. 도요타는 8월 푸토성 공장에 2억8,37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위해서다. 전자부품업체 무라타제작소도 지난해 5월 호찌민 인근 공장에 인덕터·코일 생산 라인 확대를 결정했다.
일본 기업의 베트남 진출 배경에는 탄탄한 실적이 깔려 있다.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의 지난해 9월 조사 결과,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영업 흑자 전망’ 비율은 67.5%로 '적자 전망' 17.6%를 크게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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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 2년 안에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답한 기업 비율도 56.9%로 아세안 1위였다.
실제 베트남은 일본의 생산 기지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JETRO가 2024년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 기업을 조사한 결과, 다른 나라에 있던 공장을 아세안으로 옮겼다고 답한 기업 473곳 중 가장 많은 181곳(24.8%)이 베트남에 둥지를 틀었다. 이는 일본이 선호해왔던 태국(99곳)이나 인도네시아(68곳)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비싸도 산다"…일본 브랜드 파워
일본 소매업체들의 베트남 공략도 활발해지고 있다. 2일 찾은 하노이 중심 호안끼엠 호수 인근. 유서 깊은 프랑스풍 건물 1, 2층을 유니클로 플래그십 매장이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2019년 호찌민에 1호.을 연 유니클로는 현재 32개로 매장을 늘렸고, 올가을 2곳을 추가해 34개로 늘릴 계획이다.
매장에서 만난 직장인 투이 린(25)씨는 “유니클로는 재봉이 튼튼하고 자외선 차단 기능도 뛰어나 인기가 많다”며 “디자인도 깔끔해 쇼피(온라인 쇼핑몰)에서 여러 벌을 사느니 유니클로에서 한 벌 사는 게 낫다”고 했다.
일본 브랜드에 대한 베트남의 신뢰는 상당하다. 베트남 전문 리서치 기관 Q&Me의 6월 조사 결과 일본 제품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9%에 달했다. 미국(42%), 한국(25%), 중국(15%)을 제친 1위다. 일본 제품을 ‘품질이 높다’고 평가한 응답은 81%,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은 78%에 달했다.
이에 일본 유통업체들의 베트남 진출도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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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공룡 이온은 8월 태국에서 40년간 해온 슈퍼마켓 사업을 접고, “아세안 투자의 60%를 베트남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200년 전통 백화。 다카시마야도 2027년 가을 개장을 목표로 하노이 스타레이크 신도시에 첫 복합 쇼핑센터를 짓고 있다.
"베트남은 韓 뒷마당" 역전당한 일본
일본의 베트남 진출은 한국보다 한발 빨랐다. 일본은 오랫동안 베트남 최대 공적개발원조(ODA) 지원국으로, 노이바이 국제공항 2터미널, 녓떤 대교, 호찌민 메트로 1호선 건설 등을 지원했다. 도요타·혼다·파나소닉 등은 1990년대 베트남 시장을 대표하는 외국 자본이었다.
판도가 바뀐 건 2010년대, 삼성·LG·현대차 등 한국 기업 투자가 급증하면서다. JETRO는 지난해 1월 ‘베트남에 뿌리내린 한국’이라는 이름의 보고서에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약 9,000개, 일본 기업은 약 2,500개로 집계했다. 먼저 뿌리내리고 뒤늦게 추격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일본 정부도 격차를 좁히기 위해 나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5월 하노이에서 레 민 흥 총리와 만나 양국 교역액을 2030년까지 6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514억 달러에서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과 베트남의 지난해 교역액(946억 달러), 2030년 목표치(1,500억 달러)에는 크게 못 미친다.
속도와 유연성이 중요한 신흥국 시장에서 일본이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형모 주베트남 대한상의 소장은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베트남에 진출했지만 신중한 의사결정으로 투자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뎠다”며 “한국 기업들이 빠른 투자로 입지를 다진 가운데 일본 정부와 민간이 적극 나선다면 베트남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 기업의 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