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문재인 정권 때는 결국 임기 말에 가서 꺾이긴 했잖아요. 임대차법에 세제 개편으로 시위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과열됐지만,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결국 수그러들었으니까요. 20년 동안 중개업을 해왔으나 이 정도로 무기력한 시장 분위기는 처음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도, 집이 있는 사람도 모두 패닉이에요."(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A공인중개사)
87주째 오른 집값 앞에서 사람들의 계산법이 달라졌다. 유주택자는 '어디로 옮길 수 있을까'를, 무주택자는 '과연 살 수 있을까'를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치솟는 집값을 향한 분노였다. 이제는 체념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유주택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여 갈아탈 집을 쉽게 고르지 못하고, 무주택자는 집값과 전월세 비용에 밀려 살 곳의 선택지마저 좁아지고 있다. 집이 있는 사람은 움직이지 못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한다. 주거 사다리가 아닌, 주거 벽 앞에 선 셈이다. 집값 상승이 자산 격차를 넘어 주거 선택권의 문제로 번지면서 시장에서는 '주거 포비아'가 닥쳤다는 말까지 나온다.
강남 주춤해도 외곽은 뛴다…상승장 '롱테일'
이 같은 불안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 집값이 87주째 오르며 역대 최장 상승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좀처럼 꺾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다. 전월세 수요와 실거주 수요에 더해 정비사업 이주 수요까지 '3중 수요'가 맞물리면서 추가 상승 여력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심상치 않은 건 서울 외곽 지역의 움직임이다. 서울 외곽은 통상 집값 상승장의 끝을 가장 먼저 알리는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 상승기에는 가장 늦게 오르지만, 시장이 꺾일 때는 가장 먼저 상승세가 둔화하거나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2020~22년 85주간 이어진 상승장에서도 노원구와 은평구, 성북구 등 외곽 지역이 먼저 둔화하면서 조정기 진입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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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금 외곽에서조차 '끝물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는 。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동북권·서북권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최근에도 매월 1% 이상 오르며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가 포함된 동남권의 상승 폭이 둔화하고 있지만, 고가주택 가격이 덜 오른다는 사실은 중저가 주택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에게 사실상 남의 이야기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서울 외곽은 통상 늦게 오르고, 먼저 빠지는 흐름을 보여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전월세 수요와 실거주 수요에 정비사업 이주 수요까지 맞물리면서 집값 상승 여력이 아직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특히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정비사업으로 인한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라며 "현시。에서는 하락 요인보다 상승 요인이 더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강남 등 고가주택 밀집 지역의 상승세가 주춤하더라도 서울 전체 집값은 좀처럼 꺾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수요가 집중되는 파레토형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중저가 주택까지 가격이 오르는 '롱테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강남 등 일부 고가주택만 오를 때와 달리 지금은 서울 아파트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저가 시장이 올라오면서 기존 상승장과는 다른 흐름을 나타내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실수요자들의 불안을 키우는 건 시장을 잡을 카드가 거의 소진됐다는 。이다. 서울과 경기도 15개 지역이 이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규제 범위를 넓혀도 수요가 인접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가격 상승 지역만 옮겨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대출 규제 역시 이미 높은 강도로 적용되고 있어 추가로 조일 여지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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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카드 중 하나는 15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까지 대출 문턱을 더 높이는 것이지만, 이 경우 생애최초 구입자 등 내 집 마련 실수요자부터 직격탄을 맞게 된다.
신 교수는 "고가주택을 잡겠다고 규제를 강화했지만,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 이익은 사실상 없다"며 "오히려 매매가격과 전월세 비용이 함께 오르면서 주거비 부담만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미 스트레스 DSR 3단계가 적용되고 대출 가능 금액도 줄어든 만큼, 연내 기준금리 상승 역시 거래를 잠시 주춤하게 하는 정도의 영향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주택자가 당장 피부로 느끼는 공포는 전월세 시장에서 더 선명하다. 목돈을 모은 실수요자는 눈높이를 낮춰 중저가 주택이라도 매수할 수 있지만, 그만한 목돈조차 없는 세입자에겐 선택지가 없다.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까지 모아야 한다. 집값을 따라잡기는커녕 지금 살던 곳에서 밀려날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다.
집 못 사는 것도 서러운데…전월세마저 증발
2021년 취업 후 서울로 올라와 월셋집을 옮겨다닌 30대 정아무개씨는 "서울에 살던 동료들은 주거비 지출 없이 목돈을 모아 하나둘 집을 구매했지만, 지방에서 상경해 월세로 수십만원을 지출해온 나는 목돈도 모으지 못해 외곽 지역 아파트조차 그림의 떡"이라며 "버는 돈을 모조리 집에만 붓고 있는 것 같아 두렵고, 열심히 벌어도 무주택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가 느끼는 공포는 월세 시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6년 전만 해도 선택지에 들어왔던 집이 이제는 같은 소득으로는 머물기 어려운 집이 되고 있어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0년 노원구 중계건영3차와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의 월세 중간값(보증금 1억원 기준)은 각각 140만원, 200만원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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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돈이 부족한 맞벌이 신혼부부에게도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었던 가격대다.
하지만 그 '현실적인 선택지'는 6년 만에 지키기 어려운 집이 됐다. 중계건영3차 월세는 207만5000원,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387만5000원까지 뛰며 각각 1.5배, 2배 가까이 올랐다. 반면 2020~25년 근로자의 월평균 실질임금 증가액은 고작 8만6000원에 그쳤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주거비만 급등하면서, 살던 집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세입자가 생기는 구조가 된 것이다.
가격보다 더 숨 막히는 건 시장에 나오는 매물 자체가 없다는 .이다. 2020년 7월 임대차 2법 시행 직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4만 건 아래로 떨어지고 월세 매물도 2만3000건 수준까지 줄어들자 당시 시장에서는 '역대급 전월세 매물 절벽'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0월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9743건, 월세 매물은 1만6490건에 불과하다. 당시가 전월세 절벽이었다면, 지금은 매물 고갈까지 다다른 것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2021년에도 임대차법 때문에 전월세 시장이 크게 불안했는데, 지금은 임대차법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토허구역, 비거주 1주택자 과세 강화, 등록임대사업 종료라는 세 가지 요인이 더해진 상황"이라며 "전월세 매물 자체가 시장에 잘 나오지 않으니 가격이 비싸고, 세입자들이 중저가 지역으로 가서라도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돼 집값이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암울한 건 이 같은 '주거 포비아'가 단기간에 잦아들 것이라는 전망보다 앞으로 더 짙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 。이다. 고 교수는 "제도나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최소 2년 이상 지금과 같은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청년이나 신혼부부 세대가 '집을 더 늦게 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빨리 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박감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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